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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로 완성되는 인권

FUETIT 2021. 8. 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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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호프집에 모여 나누는 학창 시절의 이야기는 그것이 몇 번이고 이미 했던 이야기인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재미있다. 아무래도 같은 장소와 과정을 공유했던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이 우물거릴수록 더욱 감칠맛이 나는 마른 오징어처럼 씹는 맛(?)이 일품이기 때문이리라. 이야기의 주제가 언제나 유쾌하고 쾌활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자연히 학창 시절 자신의 흑역사나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는 순간이 나오게 되는데, 적어도 나를 포함해 내 친구들이 학창 시절을 되돌아볼 때 새삼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도,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는 일진 무리도 아닌, 바로 몰지각한 몇몇 교사들과 학생들의 인권을 가볍게 무시하는 교내의 시스템이었다.

글의 서두에 언급한 대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넘어가는 시점이니 근래의 이야기도 아닌 셈이지만, 학교에서 선생님께 매를 맞는다는 것에 대해 당연히 순응하는 시절이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신체적 고통을 이유로 맞기 싫다는 것과는 다른, 해당 행위의 정당성에 의거한 의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상도 못할 일이고 아무런 소리를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바보 소리를 들을 정도의 상황임에도 정말 저 때 당시의 나를 비롯한 여러 학우들은 교사가 학생에게 가학적인 체벌을 가한다는 것에 대해 별다른 저항감이나 반감이 느낄 수 없었다. 나의 부모님 세대 혹 그 이전 세대 때부터 전해져 왔던 강압적인 교사들의 훈육 방식과 학생의 인권을 무시하는 시스템이 별다른 저항 없이 한국 사회에 뿌리내렸고 자연히 내 세대에서도 순응으로 이어진 셈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 또한 '명백한 잘못을 한 학생에게 교사가 합당한 수준의 체벌을 한다'라는 전제에 별다른 거부감조차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도 결코 이해할 수 없던 것은 수학 시간에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이 도대체 왜 체벌의 대상이 되어야 하냐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싸우거나 무언가를 훔치거나, 심지어는 야간 자율 학습이라 명명되는 반강제 학습을 땡땡이치는 행동 등으로 체벌을 당한다면 나는 얼마든지 인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업 시간의 문제 하나를 풀지 못한다고 해서 손바닥을 맞는 일은 명백한 잘못이라는 최소한의 '명분'조차 해당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엔 맞지 않기 위해 열심히 수학 문제를 풀어야겠다는 생각보단 수학이라는 과목과 교사 집단에 대한 환멸감만 들게 만들었다. 단순히 체벌뿐만이 아니다. 시대착오적인 두발 규정부터 시작해 개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핸드폰 소지 금지, 중앙 현관 통행금지, 통학 거리와 상관없는 성적 기준의 기숙사생 선발, 시험 성적 확인을 이유로 개개인의 과목 별 성적을 각 교실의 게시판마다 부착하는 등의 행위들은 미성년 학생들의 존엄성과 인격을 무시하며 으레 당연히 자행되었던 인권 침해 사례들이었다.

이러한 인권 침해 행위에 대해 제대로 항의하지 못했던 이유야 간단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마따나 말이야 바른 소리지만 권위를 앞세운 교사들의 합리화와 공공연히 가해질 배척 등의 보복이 아직 어린 나이였던 우리에겐 매 맞는 일보다 더욱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다. 모두가 참여해 들고일어나지 않는 이상 개인의 곧은 신념에 반비례한 개인 힘의 한계를 부딪혀보지 않아도 체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총대를 메고 나선 소수의 인물들은 존재했다. 중학생 시절 축제 자유 연설 행사에서 두발 자유화를 부르짖던 같은 반 친구를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튿날 한 교사가 수업 시간에 그를 학업과 관련된 핑계로 그를 몰아세울 때에 두발 자유화 이야기를 꺼내며 눈을 부라리던 모습 또한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그 친구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같이 참여해 싸워주지 못했다. 어쩌면 그 당시의 우리 스스로가 당연히 내뿜어야 할 분노와 정당한 항의를 포기하며,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인권과 정당한 권리 또한 포기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지역 별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시행되어가고 있다. 경기도를 시작으로 서울, 광주, 전북에 이어 가장 최근의 사례로 아마 2020626일 공포된 충청남도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에 학생인권조례가 확실히 뿌리내렸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상황이다. 아마 정책을 결정할 결재권자 위치의 기성세대에게 학생인권조례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체벌 금지나 두발 자유화는 물론이거니와 당연히 이루어져야 했던, 하지만 무시돼 왔기에 그것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항목들에 아마 몇몇 사람들은 자신들의 과거 학창 시절이 굉장히 손해 본 느낌마저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더 일찍 항의하고 참여하지 못했던 선배 세대와 내 세대에게도 일부분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내 세대 때 이뤄내 누리지 못하더라도 후배 세대까지 이러한 인권 침해를 당하지 않게 끊임없이 싸우고 참여한 많은 이들이 있었기에 학생의 인권이 이렇게 법제화되어 존중되고 보호받는 시대가 올 수 있었던 것임을 우리 모두가 자각해야만 한다.

학생 인권의 보호, 그리고 단순히 학생뿐만이 아닌 포괄적인 의미로서의 인권 문제는 앞서 말했듯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뿐. 그렇기에 요즘은 역으로 교권이 무너진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로섬 게임의 논리에 매몰되어가다 보면 결국 사회의 진보적 변화는 요원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어떠한 긍정적 흐름으로 부작용이 생긴다면 최대한 그 긍정적 흐름과 상충되지 않는 방향으로 또다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면 될 뿐이다. 기술적, 경제적으로 고도화 성장을 이룩한 우리나라에서 민주적, 인권 가치의 성장이 무시되고 느려진 부작용을 해소해가는 작금의 과정처럼. 더 이상 요즘에 비교해 학창 시절을 반추하며 손해 본다는 생각이나 요즘 애들 학교생활 편해졌다는 식의 소리는 그만할 때가 되었다. 그 시절 당연한 것들을 위해 먼저 싸워온 이들에 대한 감사함, 불의에 침묵하며 참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미안함, 많은 이들의 신세를 빌어 일구어낸 사회진보적 성취에 대한 기쁨, 그리고 나 자신도 꼭 참여하겠다는 의지까지. 이러한 저마다의 생각들이 모여 커다란 불씨를 일으키고 그것이 바로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권이란 단어조차 모르던 시절에서 인권 보호의 부작용까지 논하는 지금처럼, 이미 많은 것들을 이뤄온 우리에게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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