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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개새끼들

FUETIT 2010. 8. 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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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같은 자리에서 챗바퀴 돌아가듯 똑같은 일상만을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건 굉장히 지겹고 한심한 일이기도 하지만 가끔씩은 이런 지겨운 일상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는 경우도 있다. 지겨운 일상마저도 감사해야 했었다는 것을 어제오늘동안 확실히 느꼈다.

사실 어제부터 몸이 불편해서 요양원에 계시던 외할아버지가 병원에 가실일이 생겼다고 뜬금없이 외갓집도 아닌 우리집에서 머무르고 계셨다. 그래서 내가 졸지에 하루이틀동안 돌보게 되었는데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한 존재라는걸 느낀다. 새벽 2시 45분에 일어나 똥을 받아내는 부모님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보다는 구역질이 올라오는거다. 오줌을 받고 점심먹을때는 밥도 차려드리고 그거 다 치우고....  병수발이라는 자체가 굉장히 힘든 거라는 걸 깨닫게 된거같다.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할때마다 고맙다고 하실 때에는 남몰래 코끝이 찡해지다가도 막상 뭔가를 해야할때면 괜시리 세상 만물에 짜증이 밀려온다. 그만큼 귀찮고 짜증나는게 병수발이다.같은 맥락에서 뜬금없이 간병인들에 대한 물질적 처우개선이 존나 시급하다고 느끼기까지 한 걸 보니 앵간치 이 병수발도 존나 싫었나보군.

일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다. 다행히도(?) 나혼자 돌봐드릴 시간에는 대변을 보시지 않아서 소변만 치우는것도 감지덕지고 목욕을 시켜야 한다거나 이런 건 아니다. 하지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릴 때면 참을 수 없는 짜증이 솟구쳐 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제오늘이 무쟈게 덥잖아. 진짜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상황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진짜 악마의 목소리처럼 느껴지는 거다. 꼭 나만이 돌봐줘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고 외갓집에 외할머니나 이모네 가족들이 멀쩡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하는지 진짜 괜시리 울화가 치미는 건 어쩔수 없었다. 정작 엄마는 나에게 외갓집 식구들이 모두 어디를 간 상황이라 내가 돌봐야 한다고 말했지만 외할아버지께서 외갓집에 전화를 걸라고 하셔서 걸어본 결과 멀쩡히 다 있는 거 보고 기분이 더 안좋아졌다. 

여튼 이런 것들 때문에 내 방을 외할아버지께 내주고 거실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결국 병수발 때문에 밤잠도 설치게 됐다.(새벽에는 부모님께서 거의 하셨다.) 아침 일찍 또 대변을 처리 하는 와중 너무 짜증이 나서 안방 침대에 누워서 궁시렁거리는 나를 보고 엄마가 넌 아빠가 저렇게 돼도 안해줄거냐고 말했다. 그래서 난 그런거 죽어도 안할테니 알아서 몸관리들 잘하소 라고 쏘아주었다. 아 진짜 난 정말로 나약한 개새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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